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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퇴직을 앞둔 대기업 종업원의 고통과 고뇌

퇴직을 앞둔 대기업 종업원의 고통과 고뇌

퇴직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너는 지독하고도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인간사회는 대화와 만남을 통해 대인관계와 사교적 사실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언제나 들어왔었다. 선과 악이 공존하고 공과 사가 있지만 항상 애매모호한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면서 정의를 외치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악행을 일삼기도 하는 우리 인간들의 추악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노래해 보고 싶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오래전 TV 광고에서 나온 말이다. 너는 처음에 이 광고를 보면서 어린 나이에 참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었고, 어떻게 보면 철학적이면서 많은 생각을 떠올렸던 것 기억이 있었다.

 

그렇다. 너는 대기업에 다니면서, 모든 걸 감내하고 인내하고 복종하여야만 했었고, 그만둔다는 것은 부질없고 멍청한 짓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이야기하였다. 타이틀이 있고 네임벨류가 있으면 모든 게 용서되는 공간이며, 잘난 척과 자부심으로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사회이다.

 

너는 그런 세상 속의 일원으로 잘 먹고 잘살지 않았나?, 집안의 가장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는 안도감과 자만심으로 포장하면서 정말 오랫동안 질기게 대기업에 붙어서 살아왔으며, 행복한 시간도 많았고, 즐거웠던 일들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건 아마도 나름대로 열심히 잘 살았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하는 것 같다.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아닌 것 같지만, 순종과 복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들은 너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기쁨보다는 아픔과 고통을 더 많이 주었다. 왜 그럴까? 그들 또한 잘못 생각하고 잘못한 일이 없는데, 너에게 왜 이런 아픔과 고통을 주는 것일까?

 

순간에 잘못된 선택보다 더 무서운 것은, 민주주의에서 권력자를 뽑는 것은 능력 있고 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표를 많이 받으면 된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것도 민주주의에서는 가능한데,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가 좋은 점이다. 너가 선택한 대기업에서 10년 이상 다녔고, 그 사실이 틀렸다면 되돌려야 하는데, 못한다면 선택한 것보다 더 무지하고 용기 없다 할 수 있겠다.

 

우매 한 최고 권력자보다 더 우매 한 사람이 많은 세상

세상이 원하는 조건에 맞출 수 있다면 성공과 출세는 어느 정도 보장이 된다. 예를 들어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스펙을 갖춘다면 좋은 직장과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구하지 않아서 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사람을 제외한다면,,,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하고, 좋은 스펙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며 책임감이 투철하면서, 어떤 일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도 이런 자는 성공도 출세도 보장하기 힘들다. 물론 그 속에는 예외도 있을 순 있겠지만,,,

 

여기서 우리는 전자와 후자 모두에게 공통적이면서 결정적인 갈림길이 있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머리를 숙이고 순응과 복종할 수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그리고 자기 내면에 있는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느냐, 못 하느냐가 바로 그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겠다. 숙이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낙인찍혀 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손종과 복종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전되지 않는 유일한 본능이라고 한다. 어떤 리더가 강한 압박과 큰 소리로 담금질한다면, 불쌍한 어린양들은 본능적으로 순한 양이 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인간의 본능이라고 한다.

 

그렇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이러한 본능적인 마음과 태도를 탓할 순 없다. 탓해서도 안 될 것 같다.

 

너 또한 그동안 오랫동안 대기업에서 잘 먹고 잘 살았다면, 그건 본능에 충실했었고 당연한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너를 욕하고 이중인격자라고 질타할 수 없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너는 말년에 우매한 놈(무식하다가 더 어울린다)을 만나 이상한 일을 매일 당하고, 상식적이지 못한 일상을 매일 맞으면서, 스트레스와 고민에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살아가고 있어도,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망과 희망이 있기에 삶의 의미로 버티고 있음에 감사하다.

 

인간은 각자 자기만의 삶에 대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삶에 대한 의미와 목적이 없는 사람은 살 수 없다고 한다. 그 삶의 의미는 너무도 다르고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다. 여기서 말하는 삶에 의미는 거창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본다면, 가족을 위해 사는 것도 삶의 의미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하루 평균 15시간 깨어 있는 시간 동안 14시간을 고통 속에서 지내고, 단 1시간의 행복함에 만족하며 산다고 한다. 1시간의 행복이 14시간의 고통을 감 뇌하고 해소하게 해준다는 뜻이다.

 

순응과 복종하는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사는 대로 그냥 나만이 갖고 있는 삶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그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자기만의 삶을 살아갈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는 삶이 어떤 삶인지는 분명히 알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그건 당신이 살아가고 싶은 당신의 삶이 아니라, 편협하지만 편하게 살아가는 의지가 조금 강하다는 것이다. 먼 훗날 죽음 앞에서도 당신은 나름대로 잘 살았다고 자평할 수도 있으며, 후회하지 않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책에서 나오는 위인들이나,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대리 만족 또는 그들을 보면서 당신은 많은 상상을 해 볼 것이다. 너도 마찬가지이며 모두가 그런 생을 살았으면 하는 기대와 바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결론은

당신이 살고자 하는 삶이 아닌 타인이 살아가는 삶이 옳다고 믿었기에, 지금처럼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고 큰 불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너는 이렇게 생각한다. 수동적인 삶을 살 것인가? 능동적인 삶을 살 것인가? 수동적인 삶을 인정하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기도 싫지만, 무엇보다 네가 생각하고 너가 옳다고 믿는 것과 더불어 너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 보고 죽는 것은 어떨까?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아마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네가 그렇게 살고 싶다고 그렇게 살 수 있는 조건은 단 하나이다. 바로 용기를 내고 실천해 보는 것이다.

 

자!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답은 분명히 없을 것이다. 정답이 있다고 믿는다면 아마도 정답을 찾아 헤매다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남들이 사는 대로 따라서 살다가 죽을 것이다.

 

정답이 없으니, 문제도 없다고 생각하지는 말아라! 세상은 결코 그런 삶을 던져 주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살 수도 없기 때문이다.

 

너는 오늘도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머리카락을 잡아서 뜯고 있을지 모르겠다.

 

살아오면서 수 없이 떠올리고 수만 가지 해 보고 싶었던 일과 생각들을 되짚어 보면서, 결코 짧은 인생 동안 다 할 수조차 없을 테니, 그중에 가장하고 싶은 것부터 하나씩 지워 나가 보자고 다짐해 본다.

 

네가 깨우치지 못하면, 너의 인생에 펼쳐질 일들은 대부분 정해져 있으며, 특별할 것도 없을 것 같다. 권력이 있거나 돈이 많거나 하는 부류의 사람과 가난하고 권력도 능력도 부족한 사람의 차이는, 그저 말 한마디로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어 보자!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은 현실보다는 부와 권력만이 눈에 보인다고 하며, 가난한 사람들은 현실을 매우 냉철하고 정확하게 본다고 한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너 또한 그렇다고 인정하고 있다.

 

부와 권력에 능숙하고 익숙한 사람처럼 살기보다, 지금 이 세상의 현실을 직시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보기를 바란다.

 

믈론, 앞서 말한 대로 깨우침이 있어야 하지만~~~